샴푸, 비누, 세제의 계면활성제는 인체에 해로울까?
강석하|2015.05.05
인터넷 상에서 계면활성제에 대한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 여러 방송과 언론도 계면활성제의 위험성을 주장한다.
계면활성제가 포함된 비누, 샴푸, 치약, 세제, 화장품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사용된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 접촉해온 물질이다. 혹시 이것들 때문에 문제를 겪어 왔는가? 해롭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사용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걱정을 해야 하는 정말 해로운 물질일까?
계면활성제란 쉽게 말해서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해주는 물질이다. 그런 특성 때문에 비누, 샴푸, 치약, 세제, 화장품 등에 쓰인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서도 계면활성제를 만들어내는데 폐에서 만들어지는 계면활성제는 폐의 기능을 돕고 면역 작용도 한다.
계면활성제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인터넷 글들 중에서 자주 눈에 띄는 근거는 2012년 순천향대 홍세용 교수팀의 연구다. 홍 교수팀은 농약 중독의 원인이 계면활성제이며 계면활성제의 독성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여러 매체가 비누와 세제를 강조하며 왜곡해 보도했다. 아래 기사 제목들을 보라.
“비누·샴푸 첨가제 계면활성제… “인체 치명적 독성 함유” - 국민일보
“세제 첨가된 계면활성제 인체에 치명적 독성 유발” - 세계일보세제ㆍ비누 속 계면활성제 인체에 치명적 - 한국경제
비누에 치명적 독성분이… - 세계일보비누 등의 계면활성제, 인체에 치명적 - MBN
이런 무차별적인 겁주기식 보도는 홍 교수가 의도했던 바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YTN 기사에서 “홍 교수는 비누나 세제 등에 사용되는 계면활성제는 안전성을 검증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번 연구 성과와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연구는 단지 농약중독 대한 것이라 농약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보도가 나간 후 식약청(현 식약처)에서도 시판중인 세척제나 샴푸 등의 계면활성제는 정상적으로 사용할 때 안전성 우려가 없다고 발표했다.
또 많이 인용되는 자료는 KBS <스펀지>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에서 인하대 산업의학과 임종한 교수는 “대부분의 석유화학계 활성계면활성제는 사람에게 장기간 노출될 경우 피부 갑작자극 면역기 저하를 통해서 비염, 천식, 아토피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샴푸에 많이 사용되는 소듐라우릴설페이트,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 같은 합성계면활성제는 미국에서 보고되는 독성학 보고서에 의하면 피부에 쉽게 침투해서 심장, 간 그리고 뇌에 일정수준을 유지하면서 체내에 5일간 머물러 잠재적으로 독성이 큰 것으로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KBS <스펀지> 방송화면
여기서 말한 소듐라우릴설페이트의 유해성의 근거가 되는 논문은 International Journal of Toxicology에 발표된 1987년 동물실험 논문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활용하는 방식이 아닌 고농도로 장시간 동물에 접촉시키거나 장기간 먹였을 때 발생하는 현상에 대한 연구다. 논문에서는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서는 안전하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쏙 빼놓고 왜곡했다.
같은 저널에 2010년 발표된 논문에서도 소듐라우릴설페이트의 안전성을 재확인하고 있다.
소듐라우릴설페이트는 미용 용도뿐만 아니라 식품첨가제로도 쓰이는 안전한 물질이다. 미국 보건당국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식품첨가제로도 적정한 용법으로 사용하면 안전하다고 밝히고 있다.
International Journal of Toxicology의 2010년 또 다른 논문에서는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도 안전하다고 밝히고 있다.
도대체 전문가라는 사람이 학술적 근거도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인지 아니면 구글에 대충 검색하면 상위에 잔뜩 나오는 외국의 ‘천연’ 제품 판매 사이트에서 왜곡해 주장한 자료만 보고 사실로 믿은 것인지 모르겠다.
KBS <스펀지> 방송화면
<스펀지>에서는 또 천연계면활성제와 합성계면활성제를 어항에 풀어서 합성계면활성제에서만 금붕어에게 독성을 나타낸다는 실험 결과를 보였다. 그런데 양쪽 모두 0.5g으로 같은 양이라 하더라도 계면활성제로서의 활성 정도는 서로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이 실험은 잘못 설계된 실험이다. 다시 말해, 똑같은 세척력을 얻기 위해서는 합성계면활성제보다 몇 배나 많은 천연계면활성제를 사용해야 한다. 화면에서도 천연계면활성제는 물에 잘 풀어지지 않고 수면에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연계면활성제를 합성계면활성제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의 양을 물에 녹인다면 금붕어에게 똑같이 해로운 작용을 하게 된다. ‘합성’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계면활성제라는 성질 자체가 금붕어 아가미의 기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MBC <오늘아침>에서도 “샴푸의 공포”라는 제목의 기획취재를 방송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엉터리 금붕어 실험을 보여주었다. 또 천연샴푸를 사용한 사람과 화학샴푸를 사용한 사람 한 명 씩 두피의 상태를 확인해 천연샴푸를 사용한 사람이 두피가 깨끗해서 두피 나이가 젊다고 주장했다. 샘플사이즈가 고작 2명인 실험 자체가 넌센스이기도 하지만 화학샴푸를 쓴 사람은 “머리 감고 나서도 가렵다”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샴푸를 써서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가렵지 않다. 이 사람은 뭔가 특수한 문제를 겪는 사람이기 때문에 화학샴푸를 사용한 사람을 대표하는 샘플로도 적절하지 않다.
더욱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은 방송 앞부분에서는 3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은 두 명의 사람에게 각각 천연샴푸와 화학샴푸로 머리를 감게 해서 합성샴푸로 감은 사람이 더 깨끗하게 씻어졌다는 결과를 보여주며 천연샴푸로 감은 사람의 지저분한 피부 상태는 천연샴푸로 인한 피부 보호막이라고 주장했다. 10분도 채 안 되는 방송에서 앞에서는 합성샴푸가 두피를 더 깨끗하게 씻어낸다더니 뒤에서는 합성 샴푸를 쓴 사람의 두피가 지저분하다며 서로 반대의 결과가 나왔음에도 무조건 합성샴푸가 나쁘다고 해석한 것이다.
KBS <소비자리포트> 방송화면
KBS의 <소비자리포트>도 계면활성제의 위험성을 보도했다. 여기서는 위에서 지적한 순천향대 홍세용 교수팀의 농약 연구를 왜곡해 보도한 기사를 보여주며 “계면활성제가 인체에 치명적 독성을 일으킨다”는 근거로 강조했다. 이 방송에서는 화학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깨끗이 헹궈지지 않고 샴푸 성분이 두피와 모발에 남아있어 해롭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샴푸가 두피에 남는 이유는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합성샴푸가 똑같은 계면활성제를 사용하는 세제와 다른 점은 모발을 둘러싸 보호하는 성분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두피가 건조해져서 해롭기 때문에 헹궈낸 후에도 두피와 모발에 보호막을 형성하게끔 만든 것이다. 서강대 이덕환 교수도 지적한 것처럼 합성샴푸라고 걱정해야 할 필요도 없고 천연샴푸가 오히려 나쁠 수도 있다.
살펴본 것처럼 여러 방송과 언론에서 엉터리 근거와 어리석은 논리로 계면활성제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그로 인해 값만 비싸고 더 좋을 것이 없는 ‘천연’제품에 돈을 쓰고, 샴푸를 쓰지 않는 ‘노푸족’도 생겨난다. 헛소문을 재생산하는 언론인, 방송인, 전문가들 탓에 엉터리 정보에 속아서 머리에 기름때가 잔뜩 껴서 가렵고 악취를 참아내는 노푸족들이 가련하다.
샴푸를 헹구지 않고 다닌다거나 세제 원액을 피부에 바르고 다니지 않는 이상 계면활성제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써오던 제품에 부작용을 겪지 않았다면 안심하고 해오던 대로 사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