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술의 효과는 경혈과 무관하다?
침 치료가 통증 등 여러 불편한 증상을 덜어준다는 사실은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침술 자체의 '고유한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https://blog.naver.com/i-sbm/221230000164 )
임상시험에서 대조군으로 경혈이 아닌 곳을 찌르거나, 겉으로는 찌르는 것처럼 보여도 피부를 관통하지 않는 가짜침을 활용해 비교하면 가짜 침술 대조군도 진짜 침술 그룹과 효과에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유한 효과가 없는 가짜치료라 하더라도 위약 효과(플라시보 효과)를 비롯해서 일련의 치료 과정에서 벌어지는 행위들로 인한 비특이적 효과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가짜침 대조군에 배정된 임상시험 참여 환자는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활동, 의료인과의 상담, 치료사와의 접촉, 가짜침을 맞은 채로 휴식 등 아무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환경에 노출된다.
침술 임상시험에서는 이런 가짜침 그룹이 아무 치료를 하지 않거나(no treatment 또는 wait list control) 일반적인 치료(usual care) 등과 비교했을 때 치료 효과가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만성 통증이나 만성질환 환자는 일반적인 치료(usual care)에 효과를 보지 못해서 만성이 되고 침술 임상시험까지 참여하게 됐으니, 새로 시도하는 침술에서는 기존 치료에서는 별로 없었던 플라시보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침술 임상시험은 적절한 가짜침 대조군이 없으면 플라시보 효과를 분간해내지 못하고 유효성이 있다는 잘못된 결론이 나오기 쉽다.
특히 우리나라 한의사들의 임상시험은 플라시보 효과를 진짜 효과로 둔갑시키는 안전한 설계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미국이나 유럽의 의사들은 침술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없다고 나와도 문제가 없다. 앞으로 하지 않고 다른 치료를 사용하면 된다. 반면에 한의사들은 기존에 돈 받고 잘 하고 있던 한방치료가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다른 치료수단도 없고 곤란해진다.
매년 천억원 가량의 연구비가 한방 연구에 지원되고 있지만, 한의사들 스스로가 임상시험을 해보고 효과가 없거나 안전하지 못해서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지난달 중국 북경중의대와 톈진중의대 연구팀은 침술 임상시험에서 가짜침 대조군을 종류별로 비교해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1655-023-3608-1
앞서 설명한 배경과 마찬가지로, 논문의 서론에서도 만성 통증에 대해서 침술 그룹은 치료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중간 정도의 크기인 0.44에서 0.63의 통증 감소를 나타내고, 침술 그룹과 가짜침 그룹을 비교하면 0.16에서 0.19 차이로 좁혀져 임상적으로는 의미 없는 작은 차이만 남는다는 과거 연구들을 소개했다. 허리 통증에 침술이 진정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도 설명했다.
연구팀은 영문 논문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짜침 대조군이 포함된 요통에 대한 침술 임상시험 논문들을 검색해 총 3,321명의 환자를 포함하는 18건의 임상시험을 분석했다. 우리나라 한의사들은 기존에 발표된 자료를 분석하는 연구에서는 중국어 문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 중국 연구팀은 중국어 논문을 신뢰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중국어 논문에서는 침 치료가 효과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분석에 포함된 임상시험에서 진짜침의 가짜 침술 대조군으로는 똑같은 침을 경혈이 아닌 곳을 찌르는 경우, 피부를 뚫고 들어가지 않는 가짜침을 사용한 경우, 가짜 전기자극이나 가짜 레이저를 사용한 경우 등이 있었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 가짜 침술 대조군도 특히 통증에 대해서 상당한 플라시보효과를 나타냈음을 확인했다. 허리의 기능에도 큰 효과가 나타났지만, 삶의 질 수치에는 영향이 없었다.
가짜 대조군 중에서 가짜침이 아닌 일반침을 사용한 경우와 피부를 관통시킨 경우에 플라시보 효과가 가장 컸다.
반면에 침을 찌르는 부위가 경혈인지 여부와 시술을 유지하는 시간은 플라시보 효과의 크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경혈이 아닌 곳을 찔러도 경혈을 찌르는 정도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면 침술에 대한 한방원리와 지식은 무의미해진다. 저자들은 여기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나는 경혈이 기존 인식보다 훨씬 폭이 넓어서 경혈에서 조금 떨어진 부위를 찔렀어도 똑같이 경혈을 자극했을 수 있다는 가설이다. 다른 하나는 경혈이 아닌 곳을 찔러도 실제로 똑같은 진통효과를 일으키는 경우로, 이러면 한방원리가 의심받게 된다.
분석 결과 중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가짜 침술 대조군이 아시아에 비해서 아시아 외의 지역에서 더 큰 플라시보 효과를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여기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었는데, 데이터가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다음과 같이 추측해볼 수 있다.
침을 맞아본 경험이 많은 아시아 사람들은 가짜침을 맞았을 때 자신이 가짜침 대조군에 배정됐다고 의심할 가능성이 비아시아인들에 비해 높을 수 있다. 또한 가짜침이라고 의심하지는 못하더라도 침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침이 꽂혔을 때 느껴지는 뻐근한 느낌(중국에서는 이 느낌을 ‘득기’라고 침술에서 중요하게 여김)을 피부를 관통하지 않는 가짜침으로는 발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JAMA Network Open에 발표된 침술 임상시험에서는 중국과 미국에서 똑같은 설계의 연구가 동시에 실시됐는데 상반된 결과가 나온 사례가 있다. 치료하지 않은 그룹과 비교했을 때 미국에서는 진짜침과 가짜침 그룹 모두 효과가 있었고 중국에서는 진짜침 그룹만 효과가 있었다.
( https://blog.naver.com/i-sbm/221757511590 )
한의학에서는 경혈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기와 경혈의 존재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경혈이 어떤 생리학적 특성이 있다면 기기로 측정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런 게 없어서 측정이 불가능하다. 옛날 한의학 책들의 엉성한 그림들이 근거의 전부인데 책마다 다소 차이가 있어서 한국, 중국, 일본 세 국가 간에 92개 경혈 위치가 서로 다르게 쓰이고 있었다. 결국 세계보건기구(WHO)의 중재로 3국 전문가 회의를 거쳐서 2008년 361개의 표준이 지정되었다. 한의사들이 이 소식을 전해듣고서 한의대에서도 다르게 가르치고 한의원에서도 침 놓는 위치를 조정했는지는 모르겠다. ( https://blog.naver.com/i-sbm/221232407935 )
한의사들은 플라시보효과도 환자에 도움이 되는 효과이기 때문에 어떻든 상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침술의 효과가 그들이 믿는 한방원리에 의한 효과가 아닌 플라시보 효과이거나 경혈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생리현상에 의한 진통효과라면 ‘한의학’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오히려 한의학을 배운 적 없지만 인체의 해부구조에 대해 더 상세한 지식이 있는 의사들이 효과는 같으면서도 더 안전하게 침을 놓을 수 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효과를 봤다며 한의학 전체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가 한의학을 증명해낸 사례라고 떠들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순전히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고, 한방원리와는 무관한 진통효과일 수도 있고, 한의원에서 침과 더불어 행해진 물리치료의 효과일 수도 있고, 한의사가 봐줬다는 안정감 등의 비특이적 효과일 수도 있고, 그냥 저절로 호전될 시기에 마침 한의원을 다녀온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허리가 아플 때 침을 맞고 덜 아파진 사실이 있다고 해도 한약, 부항 등 다른 한방 치료까지 허리 통증에 효과가 있다는 증명이 되는 건 아니다. 침술을 비롯한 한방치료가 요통 외의 다른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늘 소개한 연구처럼 중국의 중의대 전문가들조차 요통에 침술이 진정한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우리도 한의학에 대해 보다 치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강석하 kang@i-sbm.org